[홍영지 문화칼럼] 늙은 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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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홍영지 작성일21-05-31 19:00본문
↑↑ 수필가 홍영지경북 출신인 어느 시인의 에세이집을 읽었다. <기로모질(耆老耄耋)>이란 제명이 붙은 책이다. 그 중에서 유달리 눈길을 끄는 글이 있었다. 그 내용을 조금만 인용해 옮겨본다.
‘늙은 정도에 따라 60세를 기(耆), 70세를 로(老), 8,90세를 모(耄)라고 한다. 耆, 老, 耄는 모두 늙은이란 뜻이다. 그런데 모(耄)는 ‘늙어빠지다. 혼몽하다’란 뜻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우리말에서 ‘빠지다’는 앞에 붙은 말을 비꼬거나 경멸하는 뜻이 진하게 담겼다. ‘흔해빠졌다, 약아빠졌다, 닳아빠졌다’처럼. ‘늙어빠졌다’란 말도 이제 혼몽하여 남의 짐이나 되고 별 볼 일 없다는 멸시의 의미가 짙게 깔린 걸로 느껴진다.
사람의 나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세월의 나이, 외형적 나이, 체력적 나이, 정신적 나이, 마음의 나이 등. 대개 사람들은 육체보다는 정신이 먼저 늙는다고 한다. ‘이 나이에 이제 뭘 하겠나’ ‘이 나이에 새삼 배워 어디 써 먹겠나’ 같은 푸념처럼 나이를 내세워 아까운 인생의 종반을 뜻 없이 허송한다.
5,6년 전 쯤. 경주의 어느 문예지의 시상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때 큰 감동을 받은 장면이 있었다. 시 부문 신인상을 78세의 노인이 받았다. 연단에서 수상하는 그를 위해 모두들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손뼉을 쳤다. 그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작품을 써온 그의 노력과 열정에 감동하고, 나이를 가리지 않고 작품만으로 노인을 신인상 수상자로 뽑은 심사위원들의 결단과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나만의 생각으로 그 분을 ‘늙은 신인’이라 이름 붙였다. 늙은 신인(新人), 아름다운 말이다. 늙었어도 새로운 사람.
하모니카를 배우러 평생학습원에 등록했었다. 거기서도 가슴 훈훈한 장면을 보았다.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인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시선을 끌었다. 그녀는 강사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또박또박 노트에 옮겨 적었다. 틈만 나면 글씨를 썼다.
쉬는 시간에 왜 그렇게 열심히 노트에 적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답했다. 글씨 쓰는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어릴 때 학교를 다니지 못해서 글을 몰랐는데 야학교에서 글을 배워서 이젠 내 이름도, 아이들 이름도 쓸 수 있어서 매일 몇 십 번 씩 쓴다. 무엇이든 글로 쓰는 것이 그리도 즐겁다. 배운 게 없어서 손주들 오면 늘 뒷전에만 있었는데 하모니카도 배워서 손주들에 불어주고 싶다. ‘고향의 봄’ ‘섬 집 아기’ ‘오빠 생각’ ‘푸른 하늘 은하수’는 꼭 불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코끝이 찡했다. 하모니카를 불어주는 할머니와 박수하며 기뻐하는 손주들의 모습을 그려 보며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만년에 공부의 즐거움을 알았고 노년의 인생을 뜻 있고 아름답게 보내고 있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머리가 녹슬지 않고 마음이 늙지 않는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은 모두 신인이다. 신인은 새로운 사람이다. 새로운 동력으로 보람을 찾는 신선한 사람이다. 삶에서 그 연령대에 알맞은 모습이 있다. 노년기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모든 연령대는 모두 일회성이다. 한 번 뿐이다. 청춘이 한 번이듯 노년기도 그렇다. 공원에 어쩌다 나가보면 대낮부터 술에 취해 벤치에 누워있는 사람, 둘러앉아 화투짝을 두들기다 멱살드잡이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노년기를 뜻 없이 탕진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옛 시인은 노래했다. ‘한 해가 다 가매 탱자향기 더욱 그윽하고 하루가 다 가매 저녁놀 더욱 아름답다’고. 인생의 황혼도 그렇게 그윽하고 아름답게 보낼 수 없을까.
배움은 높고 깊은 데로만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다. 조그만 것의 배움에도 새로움과 즐거움이 있다. 누구나 늙게 된다. 그러나 늙으면서도 항상 신인으로 살아가면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도 보람되고 아름답지 않을까.
수필가 홍영지 kua348@naver.com
‘늙은 정도에 따라 60세를 기(耆), 70세를 로(老), 8,90세를 모(耄)라고 한다. 耆, 老, 耄는 모두 늙은이란 뜻이다. 그런데 모(耄)는 ‘늙어빠지다. 혼몽하다’란 뜻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우리말에서 ‘빠지다’는 앞에 붙은 말을 비꼬거나 경멸하는 뜻이 진하게 담겼다. ‘흔해빠졌다, 약아빠졌다, 닳아빠졌다’처럼. ‘늙어빠졌다’란 말도 이제 혼몽하여 남의 짐이나 되고 별 볼 일 없다는 멸시의 의미가 짙게 깔린 걸로 느껴진다.
사람의 나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세월의 나이, 외형적 나이, 체력적 나이, 정신적 나이, 마음의 나이 등. 대개 사람들은 육체보다는 정신이 먼저 늙는다고 한다. ‘이 나이에 이제 뭘 하겠나’ ‘이 나이에 새삼 배워 어디 써 먹겠나’ 같은 푸념처럼 나이를 내세워 아까운 인생의 종반을 뜻 없이 허송한다.
5,6년 전 쯤. 경주의 어느 문예지의 시상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때 큰 감동을 받은 장면이 있었다. 시 부문 신인상을 78세의 노인이 받았다. 연단에서 수상하는 그를 위해 모두들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손뼉을 쳤다. 그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작품을 써온 그의 노력과 열정에 감동하고, 나이를 가리지 않고 작품만으로 노인을 신인상 수상자로 뽑은 심사위원들의 결단과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나만의 생각으로 그 분을 ‘늙은 신인’이라 이름 붙였다. 늙은 신인(新人), 아름다운 말이다. 늙었어도 새로운 사람.
하모니카를 배우러 평생학습원에 등록했었다. 거기서도 가슴 훈훈한 장면을 보았다.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인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시선을 끌었다. 그녀는 강사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또박또박 노트에 옮겨 적었다. 틈만 나면 글씨를 썼다.
쉬는 시간에 왜 그렇게 열심히 노트에 적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답했다. 글씨 쓰는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어릴 때 학교를 다니지 못해서 글을 몰랐는데 야학교에서 글을 배워서 이젠 내 이름도, 아이들 이름도 쓸 수 있어서 매일 몇 십 번 씩 쓴다. 무엇이든 글로 쓰는 것이 그리도 즐겁다. 배운 게 없어서 손주들 오면 늘 뒷전에만 있었는데 하모니카도 배워서 손주들에 불어주고 싶다. ‘고향의 봄’ ‘섬 집 아기’ ‘오빠 생각’ ‘푸른 하늘 은하수’는 꼭 불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코끝이 찡했다. 하모니카를 불어주는 할머니와 박수하며 기뻐하는 손주들의 모습을 그려 보며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만년에 공부의 즐거움을 알았고 노년의 인생을 뜻 있고 아름답게 보내고 있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머리가 녹슬지 않고 마음이 늙지 않는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은 모두 신인이다. 신인은 새로운 사람이다. 새로운 동력으로 보람을 찾는 신선한 사람이다. 삶에서 그 연령대에 알맞은 모습이 있다. 노년기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모든 연령대는 모두 일회성이다. 한 번 뿐이다. 청춘이 한 번이듯 노년기도 그렇다. 공원에 어쩌다 나가보면 대낮부터 술에 취해 벤치에 누워있는 사람, 둘러앉아 화투짝을 두들기다 멱살드잡이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노년기를 뜻 없이 탕진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옛 시인은 노래했다. ‘한 해가 다 가매 탱자향기 더욱 그윽하고 하루가 다 가매 저녁놀 더욱 아름답다’고. 인생의 황혼도 그렇게 그윽하고 아름답게 보낼 수 없을까.
배움은 높고 깊은 데로만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다. 조그만 것의 배움에도 새로움과 즐거움이 있다. 누구나 늙게 된다. 그러나 늙으면서도 항상 신인으로 살아가면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도 보람되고 아름답지 않을까.
수필가 홍영지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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